2026년 7월 28일 화요일

잠자는 교회를 깨운다 (6) 최홍준

 


6 대각성전도집회 - 푸른 바다를 닮은 사람들의 증언

제자훈련을 마친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자기정체성을 뚜렷이 정립하게 됩니다. 자기정체성이란 바로 자신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는 긍지나 특권의식만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사명과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216

IMF 시대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설교의 초점을 허무감이나 공허감 같은 데 맞췄습니다. 그때는 생활에서 그리 크게 답다한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IMF 시대가 된 지금은 절망과 좌절 같은 주제에 초점을 맞춥니다 ... 독서를 하면서 지금 사회 속의 일반인들이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는가를 탐색해 그 쪽으로 자연스럽게 접근 235

대각성운동은 율법화되고 윤리도덕화 되어버린 형식적인 종교생활이 복음을 통해 갱신되는 운동이다. 기존교인들이 새로워지는 가운데 뜨겁게 다시 헌신하면서 전도열정이 생기게 되었고, 그들이 모여서 복음을 증거할 때 온 미국과 전세계에 대각성부흥이 일어났다. 핵심은 복음의 능력이다 259

새신자들에게 믿느냐는 말 한 번 하지 않고도 전도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60

제자훈련 과정을 거치면 전도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평생을 쉬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261

요약

저자는 전도에 관한 고찰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제자훈련 받은 성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자훈련을 마친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자기정체성을 뚜렷이 정립하게 됩니다. 자기정체성이란 바로 자신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는 긍지나 특권의식만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사명과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216" 

그렇다. 전도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자 책임이다. 

하지만 저자가 추구한 전도는 단판승부식 전도가 아니다. 이슬비 전도법을 동원하여 감정의 연결고리를 구축하고 관계를 통해 새신자가 전도집회에 올 수 있도록 장기간 준비를 한다. 집회에서도 altar call (즉흥적인 결신 초청) 대신 새신자가 생각과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긴다. 몇년에 걸쳐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전도폭팔 집회를 통해 큰이익을 얻는 사람은 새신자 뿐만이 아니다. 교회에 오래다닌 기성신자들도 새신자들이 복음을 영접하는 현장을 목격함으로 큰 은혜를 체험한다: 

"옆에 앉은 불신자들이 결신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들도 은혜를 받고 좋아하는 겁니다. 이런 감동과 은혜는 전도집회에 참석해본 사람만이 안다 258" 

생각

일생을 교회에 몸담아 왔지만 한번도 전도란걸 해 본적 없는 인종이 바로 나다. 어렸을 적 언제나 삶의 중심은 교회였고, 신학생이 된 후에는 교회가 직장이 된 삶을 살아왔다. 전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솔직히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교회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는데 왜 새로운 사람을 데려와야 하지?" 전도에 대한 나의 이해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생각이다. 

전도는 교회건물안에 더 많은 사람들을 끌고 오기위한 수단이 아니다. 전도는 말 그대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하신 예수님의 도(道)를 전(伝)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를 진리전수(真理伝授)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교회안에서 전도가 사라졌다. 삶으로 전도한다는 그럴싸한 표현이 등장하면서 결론적으로는 말로도 삶으로도 전도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성도들이 대량생산됐다. 나도 그중 한명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시간이 지나면 교회는 자연스럽게 "율법화되고 윤리도덕화 되어버린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강조하게 된다. WHY? 그래야 집단의 관리유지가 편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타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 "복음을 통해 갱신되는 운동 = 전도&양육" 밖에 없다. 한영혼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복음이 한사람의 삶을 바꾸는 상황, 이러한 순간들을 목격할 때 "율법화되고 윤리도덕화 되어버린 형식적인 종교생활" 껍질이 깨진다. 

적용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했던 전도집회를 지금 당장 모든교회가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엑끼스를 뽑아내어 각자의 컨택스트에 맞게끔 활용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매달 마지막주일 나가는 노방전도를 계속 시도하고자 한다. 거절당하는게 당연한 전도. 내 안에 "거절 내성(Rejection Immunity)" 근육을 키우자. 

2026년 7월 6일 월요일

잠자는 교회를 깨운다 (5) 최홍준

 


5장 조용한 접목

"본질을 잡고 고민하다보면 방법이 생깁니다 129"

"성도들의 높은 제자훈련 참여도는 장로그룹의 모범이 절대적인 뒷받침이 되었다고 봅니다 169" - 죽을 때 까지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존경을 받는 근거

"언제나 신앙경륜이 훨씬 많은 장로님들께 '함께 성장하기 위해 말씀을 중심으로 공부하자.'고 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라 171

요약

5장은 분량이 많다. 그래서 현재 나에게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내용들을 요약해 보았다. 먼저 5장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조용한 접목." 왜 조용한가? 왜 접목인가? 사랑의 교회에서 목숨 걸고 제자훈련에 임하였던 저자가 전통주의 기성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시작하고 운영해 보았을때 피부로 느낀 진리라 추측해 본다. 이미 성장하고 있는 나무의 반을 자르고 다른 나무의 윗 반을 가져와 붙이면 과연 나무가 살아남을까? 네버. 둘 다 죽는다. 조용히=작게, 하지만 계획적으로 접목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기성교회에서의 제자훈련 첫걸음이 꼭 장로님들과 함께여야 하는 점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첫단추는 무조건 장로님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장로님들임을 잊지 말하야 합니다. 장로님들에게 만남, 면담, 당회, 기도회 등을 통해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 똑같이 필요합니다 139" 이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 저자는 무엇을 하였는가?

"목사는 교회 중직인 장로를 이해해야 한다. ... 주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셨다 146"
"목사인 저도 장로님들을 향해 옛날 세대, 기성세대라고 몰아붙이기 보다 그 시대를 감당하신 어른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한다 146"
"어찌됐든 장로님들을 이해하려고 목사가 먼저 노력하다보면 목사와 장로 사이에 불신의 골이 생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닥 된다 148"

제자훈련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장로님들의 협력이 필수조건임을 기억해야 한다.  

느낌

저자의 글은 간결하다. 그래서 행간을 보지 못하면 혹자는 "제자훈련 접목, 참 쉽네" 라고 착각할 것이다. 책에 담지 못한 얼마나 많은 노고가 있었을까? 목회자로서 해야 할 일은 하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성도들에게 하나님 자녀로 택함 받음 (특권)과 세상으로 보냄 받음 (소명)을 계속 비전 선포하며 잘 훈련하는 것이다. 이 과정 가운데 반대와 역경은 반드시 있을 것이고, 그것을 잘 감당하는 것 또한 목회자와 교회 리더들의 자질인 것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리더들과 동역하고 싶다는 갈망이 더 커진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목회자가 아닌 성도의 입장에서 교회를 경험해 보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 반대편에서 보면 목사의 어떤 모습이 보일까? 성도들은 목사/장로의 어떤 모습에 실망하고 어떤 모습에 도전을 받는 것일까?

제자훈련은 시대를 막론하고 절대 변치 않는 교회의 소명이다. 하지만 무엇을 전하고 어떻게 훈련 할지는 시대와 함께 변해야 한다. 교실에 앉아 일대다수로 지적 정보만 축적하는 방식은 벗어나야 한다. 소수로 짜여진 그룹안에서 모든 참가자들이 동등한 파워밸런스를 유지하며 중심에 있는 하나님말씀에 함께 접근 해야 한다. 비난과 정죄가 금지된 안전한 환경에서 서로를 향한 존중 가운데 나눔이 있어야 한다. 제자훈련 인도자는 더이상 '나를 따르라'식의 리더가 아니다. 훈련 받는 자와 함께 성장하는 동행자이며 유경험자로서 훈련 받는 자를 돕는 Mentor이다.                   

적용

박사과정 지도 교수님으로부터 전수받은 금언이 있다.
"Listen to understand. Speak to serve."
이전에는 흉내만 냈다면, 지금은 나의 본질로 만들어 가자.

2026년 6월 19일 금요일

잠자는 교회를 깨운다 (3&4) 최홍준

 


3장 깨어라 일어나라

"저는 항상 교회는 장로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장로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85" -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는 장로님들

4장 훈련은 전투의 연장입니다

"장로의 직분은 양떼를 위해 죽어야 하는 직분입니다. 이제 죽을 각오로 저나 장로님이나 달려가야 될 것입니다 93"

'제자훈련에서의 리더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탁상공론식의 이론에만 그쳐서도 안 되고, 잡담이나 늘어놓는 수다 떠는 장소로 바뀌지 않도록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주는 일은 전적으로 리더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114'

요약

3장은 목회초기 경험한 교회안에서의 어려움과 해결법, 4장은 본격적으로 제자훈련을 런칭하기 위해 어떤 절차가 있었는지, 그리고 병마로부터 기적적으로 회복한 목사님의 개인적 간증이 담겨있다.     

이번 나눔에서는 특별히 최목사님의 문제해결 방식을 케이스 스터디 식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밑은 3&4장에 기록된 목사님의 경험들이다.   

  • 비본질 전통: 주일 설교 전문을 동일 주보에 게재

대책 - 성도들이 설교 시간에 원고 설교를 보면 그건 강의다/ 설교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 다음 주 주보에 싣는 것은 가능

반응 - 당회에서 반대

대책 - 왜 그 제도가 생겼는지 확인/ 전목회자의 문제를 확인/ 장로님들의 아픔을 공감/ 절대 내용반복이 없을 것을 약속/ 만약 그런일이 생기면 주보에 설교전문을 올릴 것을 약속

  • 비본질 전통: 예배 중 박수를 치니 호통을 치는 장로님

대책 - 목사를 환영하는 것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별개 문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잘못되어 왔는가 문제의 근원 체크

  • 어려움: 새로운 앰프 필요

반응 - 재정적 이유로 반대

대책 -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말씀을 기초로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 음향시설의 개선이 교회의 근본적 문제임을 설명 (돌봄/새신자)/ 헌금하도록 격려

  • 어려움: 감사헌금과 십일조 봉헌자 예배시간에 호명

대책 - 장로님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 (헌금감소)을 확인/ 성도들에게 예배 중 헌금 원리를 설명

  • 어려움: 교회 냉방시설 문제에 대해 장로님들이 무관심

대책 -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제시/ 공동의 비전 (전도) 제시/ 바로 바꾸기 보다 수요예배 에베소서 강해를 통해 올바른 평신도 지도자관을 가르치다/ 성경적 윈리들을 가르침으로 젊은층들의 지도층에 대한 신임을 가꾸다/ 타이밍을 보아 교회에 제시

  • 어려움: 불만으로 인해 영향력 있는 여전도사님 사임

반응 - 교회안에서 담목이 내쫓았다는 소문

대책 - 묵묵히 불신의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림/ 그 문제로 인해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불신이 가라앉고 난 후 당회에서 인사권을 부탁/ 조화의 필요를 설득

  • 어려움: 예배시간에 복음성가를 불러도 되는가

반응 -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안된다

대책 - 변해가는 시대에 대처하며 감당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임을 가르침/

"시대는 계속해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매일 다른 이들의 뒤만 쫓아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히려 문화적인 면에서나 모든 면에서 앞장서서 나아가야 합니다 84"

  • 어려움: 영적권위가 없는 장로님들 (성도들의 신뢰가 없는 장로님들)

대책 - 교구를 맡겨 드리고 책임감을 가지고 기도로 준비 하게끔 환경조성/ 모두 참여하는 수요일 예배 후 기도모임/ 15분으로 시작해서 자발적으로 1시간을 넘기기 까지 성숙해짐

"목사와 장로는 성도들에게 존경을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93"

"그렇게 기도 모임을 하며 말씀을 나누자 교회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두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말씀처럼 교회 분위기는 너무도 뜨거워졌고,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는 영적인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적인 능력으로 교회 분위기를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94"

느낌

최목사님의 문제해결 방식에는 다음 세가지 원칙이 보인다:

1.사람들 반응의 원인을 규명하고 공감한다

2.왜 변화가 필요한지 대의명분을 가지고 선교사명의 관점에서 설득한다

3.기회가 무르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언제든 실천할 준비는 되어있다.  

첫번째로 장로님들로부터 반대반응이 나왔을때 왜 반대하는가에 대한 원인 규명을 하셨다. 인간은 심리적 존재이기 때문에 불안에 취약하다. 전담임목사와의 불화, 교회의 분열, 성도수 감소, 그리고 헌금액 감소 등등, 최목사님은 장로님들이 왜 새로운 시스템 구축 (음향, 냉방, 주보, 헌금)에 반대하셨는지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셨다.   

두번째로 변화의 필요를 설명할 때 최목사님은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교회가 감당해야 할 선교사명의 관점으로 설득하셨다. 생존모드에 있는 생명체를 변화 시키기 위해서는 그들도 함께 믿고 함께 공감하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음향, 냉방, 복음성가 등등의 변화를 논할 때 표면적인 이득만 가지고 설득했다면 절대 당회는 목사님의 제시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자훈련 시작을 위한 밑작업과정을 보면 최목사님이 엄청난 인내심을 가지고 기회가 무르 익을 때를 기다린 것을 알 수 있다. 제자훈련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성도들을 위해 귀납적 성경공부 원칙을 활용한 심방을, 장로님들을 위해서는 그들이 익숙한 기도모임, 그리고 교구담당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교회의 분위기를 말씀으로 서서히 바꾸어 나가자 조금씩 뜨거운 기도, 사랑의 교제가 시작된 것이다.           

적용

3&4장을 읽으며 다시한번 확인했다: 장로교 교회는 장로와 담임목사의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 호산나교회의 변화는 최목사님의 탁월한 리더십과 심성이 착한 장로님들의 저력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기적적으로 매칭되어 나온 결과물이다.    

"목사와 장로는 성도들에게 존경을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93"

이번 독서 중 가장 마음에 팍 꽂힌 목사님의 말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 교회안에서 신앙적인 존경을 받기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답은 간단하다. 베이직 (말씀탐구, 기도생활, 교제와 선교)에 신실, 그리고 "상식"을 가지고 사는 것.     

"그렇게 기도 모임을 하며 말씀을 나누자 교회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두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말씀처럼 교회 분위기는 너무도 뜨거워졌고,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는 영적인 코이노니아가 일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적인 능력으로 교회 분위기를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94"

두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 하신다는 말씀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다. 그래서 매주 목요일 밤9시에 청년들과 기도 모임을 시작한다. 줌으로, 15분간. 두세명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기도하면 일어난다는 그 역사를 목격하고 싶다.

2026년 6월 2일 화요일

잠자는 교회를 깨운다 (1&2) 최홍준

 

1장 잠자는 교회, 그 무한한 잠재력 속에서

평범의 미학

"전통교회에 부임해서 무력한 목회 현장을 보신 후에 낙담하는 분들에게 어쩌면 제 모델이 참고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변명으로 책을 쓰다 17"

"아무리 병약하다 하지만 몇 십 년을 하나님의 교회로서 사명을 감당해온 전통교회의 이면에 흐르는 도도한 저력은 그냥 사장돼야 하는 것일까요 18"

아예 교회간판을 떼든지

"어떻게 하면 젊은 사람들이 방황하지 않는 더 건강한 교회를 만들 수 있을까25"

"교회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건강해야 하고, 생명력 있어야 하며, 세상을 향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25"

턴 어라운드

"말씀을 사랑하게 되었고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노방전도를 다니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부터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가슴속에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 가르치는 중에도 하나님 은혜에 젖어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 전도하는 것이 즐겁고, 기도하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 예수님을 믿게 된 사실에 감격 27"

"굶어죽을 각오를 했고, 얼어죽을 각오를 했고, 맞아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말입니다. ... 그러자 제 마음에 천국이 찾아왔습니다 30"

우리 만남

"하나님 중심의 삶 ... 하나님 안에서 비전을 갖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목회적 '야망'을 꿈꾼다. ... 야망은 목회의 순수성을 갉아먹는 결정적인 독소 38"

2장 사랑이 위대하더라

"제자훈련에 미쳐야 한다. 목회는 단순해야 한다. 오직 복음."

비전만 같으면 문제없다

목사 같지 않은 진짜 목사

"옥한음 목사: 주님 앞에서의 철저한 헌신, 매사에 형식적인 것을 싫어함, 꾸밈없는 소탈함으로 생활 49"

"겸손, 정직, 투명 49"

"제자훈련에는 타협없는 강직함50"

"기초는 아주 순수하고 복음적인 뿌리에서부터 세워져야 함51"

설교에도 균형이 있어야

"하나님의 공의를 전하는 메시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전해져야 균형잡힌 설교가 된다 53"

최 목사, 부산으로 가게나!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조직체가 아니고 생명체라는 것, 그러기에 생명체인 교회는 건강해야 하며, 건강하면 잘 성장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55"

요약

1&2장은 저자의 목회자로서의 부르심, 그리고 본인이 경험한 고옥한음 목사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저자의 교회론은 자신의 그리스도인론에서 나오는 것 같다. "교회는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저자의 표현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맞바꾸어도 문장이 성립된다. 예를 들어 25쪽에 "교회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건강해야 하고, 생명력 있어야 하며, 세상을 향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문장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인으로 바꾸어도 아무 이상이 없다: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건강해야 하고, 생명력 있어야 하며, 세상을 향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반대로 저자 자신이 체험한 은혜의 감격, 그리고 그것을 통한 결심을 나타내는 문장에 “교회”를 넣어도 자연스럽다: "교회는 말씀을 사랑하게 되었고 기도하는 교회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노방전도를 다니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부터는 교회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가슴속에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 가르치는 중에도 교회는 하나님 은혜에 젖어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 전도하는 것이 즐겁고, 기도하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 예수님을 믿게 된 사실에 감격하였다 27"

느낌

내용에 대한 나의 해석이 조금씩 변해간다. 처음에는 "내가 섬기는 교회를 바꾸기 위해 이 책으로부터 뭘 배워서 어떻게 써 먹을수 있을까?"였다. 답답한 나의 심정, 전통에 얽매인 최목사님의 첫 담임목회지, 이러한 키워드 들이 나의 주 관심사 였다. 헌데, 북클럽을 하기위해 다시 1&2장을 읽어보니 "교회"가 아니라 그안에 있는 "개인"이 눈에 들어온다. 그 개인은 당연히 최목사님 자신과 옥목사님이다. 그리고 교회란 전체보단, 그 안에 있는 나 개인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가 더 강하게 다가온다:

"말씀을 사랑하게 되었고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노방전도를 다니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부터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가슴속에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 가르치는 중에도 하나님 은혜에 젖어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 전도하는 것이 즐겁고, 기도하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 예수님을 믿게 된 사실에 감격했습니다 27"

"굶어죽을 각오를 했고, 얼어죽을 각오를 했고, 맞아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말입니다. ... 그러자 제 마음에 천국이 찾아왔습니다 30"

"하나님 중심의 삶 ... 하나님 안에서 비전을 갖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목회적 '야망'을 꿈꾼다. ... 야망은 목회의 순수성을 갉아먹는 결정적인 독소 38"

"제자훈련에 미쳐야 한다. 목회는 단순해야 한다. 오직 복음."

"옥한음 목사: 주님 앞에서의 철저한 헌신, 매사에 형식적인 것을 싫어함, 꾸밈없는 소탈함으로 생활 49"     

내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나는 과연 이분들 처럼 믿고 행하고 있는가. 마이클 잭슨의 노래처럼 "I'm starting with the man in the mirror."하고 있는가?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도 바울처럼 복음에 미쳐야 한다.

적용

이번 년도 부터 매달 4번째 주일 청년부 멤버들과 노방전도를 나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복음을 이해하는 훈련, 그리고 전하는 훈련이다. 책에 나온 저자의 모습이 나에게 롤모델이다. 거기서 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잠자는 교회를 깨우는 자가 되기위해. 

전도를 시도했다. 장소는 하퍼커릿지. 목표는 한국학생이었으나,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몰도바 출신의 부부를 만났다. 자녀의 오케스트라 오디션이 하퍼커릿지에서 있는데 마치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종교에 관한 리서치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당신의 종교를 알려달라고 물어봤다. 

남편은 자신은 다양한 종교에 관해 꽤 많은 공부를 결과 종교는 폭력적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다. 하지만 내가 왜 기독교인인지 호기심을 가져주었고, 나는 그에게 내가 왜 기독교를 나의 종교로 선택, 유일한 진리로 선택했는지 나눌수 있었다. 복음을 그대로 나누었다. 그는 죄에서 뭔가 걸리는듯 했다. 죄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죄란 눈에 보이는 액션이 아닌 이미 하나님과 멀어진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버린 상태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자신은 성선설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게 더 해피하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고도. 그리고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과연 복음의 씨앗이 그의 마음 밭안에 심어졌을지 궁금하다. 빅터, 그의 이름이다. 복음이 뿌리를 내리길, 또 다른 누군가를 통해 자라길 기도한다. 

2026년 5월 21일 목요일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3) - 백세희

3주 - 내가 나를 감시해요

- 마음에 든 문장

"늘 남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는 내 모습이 있었다. 그렇게 검열하다 보니 이제 내 목소리까지 녹음해서 든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마음이 고통을 오롯이 실감하는데도 누군가가 나를 비웃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두렵다"

"감정 상태를 좋게 바꾸다기 보단 과도하지 않게? 극단적이지 않게 바꾸는 게 중요하죠"

"자동으로 드는 생각을 조금 꺽어보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경험이 과거의 경험을 덮어주기 시작하면, 어쩌면 나를 바라볼 때나 사람을 대할 때 지금보다 훨씬 밝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 요약/느낌

저자는 어린시절 어떤 아이가 무심코 내뱉은 자신의 아토피에 대한 발언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이 경험으로 저자는 병적으로 타인의 눈을 인식하게 되었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신이 감시하게끔 되어버렸다 고백한다. 그녀는 상담가에게 자신의 고민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늘 남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는 내 모습이 있었다. 그렇게 검열하다 보니 이제 내 목소리까지 녹음해서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마음이 고통을 오롯이 실감하는데도 누군가가 나를 비웃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두렵다" 

저자의 모습은 도가 지나치기는하나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메타인지적 능력이다. 내 자신을 객관시 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것이 없는 사람들은 솔직히 타인에게 민폐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자의 경우 이 능력을 통해 자기자신을 부정적 감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큰 문제이다.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그렇게 반응 하도록 저자의 몸과 마음은 이미 굳어졌다.

상담가는 그녀를 다그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관찰 후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부정적인 감정반응이 극단적이지 않게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말한다. 충분히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을 컨트롤 하자는 이야기다. 이렇게 자동으로 드는 생각을 조금 꺽어보는 노력을 통해 "새로운 경험이 과거의 경험을 덮어주기 시작하면, 어쩌면 나를 바라볼 때나 사람을 대할 때 지금보다 훨씬 밝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조언하며 상담가는 이번 상담을 마친다. 

- 적용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 돈 한푼 들지 않지만 내가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특히 호화로운 삶의 이미지가 넘쳐흐르는 현재 시대는 의도적으로 SNS 를 필터링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가 나눈것처럼 SNS는 보면 볼수록 우울해 진다. 나 빼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쓸대없이 SNS 보지 말자. 백해무익이다. 

2026년 5월 20일 수요일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2) - 백세희

 


2주 "저 혹시 허언증인가요?"

- 마음에 드는 문장

나는 감정이입을 잘하고, 공감도 잘하고, 또 공감을 잘해줘야 한다는 강박까지 있어서 상대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나도 그런 적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했다. 웃기고 싶고 관심받고 싶을 때면 또 거짓말을 하고, 동시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이상화된 기준을 낮추는 법 - 자신감이 생긴다면. 완벽함에 대한 탐구, 이상을 좇는 마음 자체가 안 생길 수도 있어요
자신이 정의롭지 않은 사람이라고 이미 규정해버린 거죠. 그게 무엇이든 기준선이 높으면 지금 나의 상태를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어요. 자신을 개선해나가야 하는 사람처럼 보는 거죠
나도 힘들어라 말 못하고 '아 저 친구도 힘든데 내가 몰랐구나' 하며 자책하고 있는 거죠. 다른 사람의 감정 생각하는 거 좋아요, 관심 쏟는 거 좋죠. 하지만 제일 먼저 나를 점검했으면 좋겠어요. 내 기분을 먼저요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해결할 수 있어요. 자신을 알고자 하지 않으면서 '내가 왜 이러지'라고만 생각하면 안 돼요
다른 사람들의 기대감도 있겠지만, ... 그냥 이게 난데 뭐 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훨씬 더 자유로어질 수도 있어요

- 요약 & 느낌

저자는 타인에게 공감을 배풀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나는 감정이입을 잘하고, 공감도 잘하고, 또 공감을 잘해줘야 한다는 강박까지 있어서 상대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나도 그런 적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했다.” 친구나 동료들이 힘들다 말하면 그들의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던 자기자신을 탓한다. 자신을 완벽이란 잣대 앞에 세우는 저자는 진정한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 몰라 힘들어 한다.
상담가가 이렇게 말한다: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해결할 수 있어요. 자신을 알고자 하지 않으면서 '내가 왜 이러지'라고만 생각하면 안 돼요." 자신을 알지 못하면 결국 타인의 시선을 의지한다. 타인이 나란 존재를 정의하게끔 만들어 버린다.
그렇다면 나를 안다는 것은 과연 무슨 말일까? 심플하게 설명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다. 호불호의 대상과 정도는 정말 다양하다. 음악, 영화, 만화, 음식 등등 부터 시작해서 직업, 비전, 인간유형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에게는 다양한 대상에 대한 다양한 선호도가 있다.
먼저 나의 취향을 알아야 한다. 어느정도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데이터가 쌓이면 그 데이터를 분석해서 나의 성향을 알 수 있고, 또 "왜" 라는 질문에 대해 어느정도의 답을 얻을 수 있다.
"왜 저 사람과 있으면 짧은 시간에도 에너지가 뺏기지 (에너지 뱀파이어)? 왜 이 사람과는 오래 함께 있어도 즐겁고 질리지 않지?" 나와 맞는 또는 맞지 않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파악해야 그런 성향의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대책을 세울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감도 있겠지만, ... 그냥 이게 난데 뭐 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훨씬 더 자유로워질수도 있어요.”
하지만 좋은 걸 좋다 싫은 걸 싫다 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다. 사회라는 곳은 나에게 눈치를 보게 만들고 의견을 굽히게도 만든다. 결국 나의 성향은 존중하되 그것을 어떻게 표현 할 것인가는 지혜가 꼭 필요하다.

- 적용

이전에는 "이건 아니다"라고 느낌이 들어도 주변이 그걸 원하면 묻어가는 스타일 이었다. 허나 근래들어 조금씩 이 스타일을 바꾸어가고 있다. 묻어가다 전체가 손해를 본 경험을 몇번했기 때문이다. 아닌건 아니라고 지혜롭게 말할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내 자신을 과신 할 필요는 없지만 결정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 해서도 안된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1) - 백세희

1주 "그냥 좀 우울해서요"

- 마음에 든 문장들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컸고, 특히 낯선 상황에서 심한 불안을 느꼈지만 안 그런 척 연기도 잘했다. 그래서 괜찮을 줄 알고 자신을 더 채찍질했다. 그러다 더는 견디기가 힘들어져서 상담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긴장되고 두려웠지만 기대를 비우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언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어요. 잘못된 관계 같았거든요. 언니는 되게 모순적이었어요. 나는 되고 너는 안 돼, 이런 식? 자기는 외박해도 되고 너는 안 돼. 난 네 옷 입어도 되고 너는 안 돼. 이런 거. 그런데 완전 애증이었던 게, 언니가 너무 싫다가도 언니가 저한테 화를 내면서 관심을 끊으면 너무너무 두려웠어요.
제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상대가 저를 만만하게 볼 거라는 생각에 좋아하는 걸 잘 티 내지도 못해요
애인이 절 사랑해주고 다 받아주는데도, 뭔가 답답함이 생겨요
의존성향 … 감정의 양 끝은 이어져 있기에 의존성향이 강할수록 의존하고 싶지 않아 하죠. 예를 들어 애인에게 의존할 땐 안정감을 느끼지만 불만이 쌓이고, 애인에게서 벗어나면 자율성을 획득하지만 불안감과 공허감이 쌓여요 … 우울함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또 노력하고 실패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주된 정서 자체가 우울함이 된 거죠.
일탈이 필요해요
SNS에 가식적인 삶을 올리게 돼요. 행복한 척하는 건 아닌데, 책이나 풍경, 글 같은 취향을 드러내면서 특별해 보이고 싶어 하는 거죠. ‘나 알고 보면 이렇게 깊이 있고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처럼요. 그리고 제 기준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해요. 제가 뭐라고 감히 사람을 평가할까요. 너무 이상해요.
말을 해봤자 듣지 않을 거 같은 사람들은 피하는 것도 나를 위한 선택이 될 수 있어요
타인이 나를 표현하는 말에 너무 타이틀을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공감을 더 잘해줘야 한다고 의도하는 순간부터는 숙제가 되거든요. 그러면 공감 능력이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어요. 관심 없는 거에는 관심 안 보이는 것도 좋아요.
자신의 상태를 본인의 주관적인 느낌으로 굉장히 예민하고 우울하게 느끼고 있어요. 미치지 않았는데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는 거죠.
매번 이상화된 기준에 도달하는 걸 실패하면서 자신에게 벌을 주고 있는 거죠. 그렇게 엄격한 초자아가 있으면, 나중에는 벌을 받는 게 만족스러워지는 지경까지 갈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사랑받는 것을 의심하고 일부러 상대에게 욕을 먹을 때까지 행동하면서, 상대가 나를 포기하면 오히려 안심하는 상태까지 가게 되는 거죠. 실제 내 모습보다 밖에서 제어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외모 때문에 강박감이 나오는 건 아니에요. 이상화된 내 모습이 있기 때문에 외모에 집착하는 거죠. 그 기준의 폭을 좁고 높게 만들어놓은 거예요
난 스스로에게 필요 이상으로 가혹하고, 그래서 위로가 필요하고, 내 편이 필요하다.

- 요약

그녀는 우울증을 겪고 있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상담가와 나눈 대화로 추측해 보면 어린시절부터 우울증상이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가정폭력, 엄마의 무기력, 언니와의 건강하지 못한 애착관계 등등 그녀의 우울을 강화 시킨 요소들로 보인다.
그녀는 대인관계에서도 어려움이 있다. 만남도 관계의 유지도 원한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있다. 관계를 원하지만 의존하는 자신의 성향을 혐오한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필요하지만 그들과 같이 오래 있길 원치 않는다. 왜냐.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을때 "뭔가 답답함"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녀는 타인의 시선과 말에 민감하다.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한다 해도 그 상대가 자신을 만만하게 볼 것 같아 좋아하는 티도 못낸다.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 지고 싶지만 또 그들의 높은 평가를 갈망한다: "SNS에 가식적인 삶을 올리게 돼요. ... 특별해 보이고 싶어 하는 거죠. '나 알고 보면 이렇게 깊이 있고 괜찮은 사람이다' 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처럼요."
그녀는 엄격한 윤리 잣대가 있다. 그래서 공중도덕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상당히 날카로운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또 죄책감을 느낀다. 스스로를 약하다 생각하고 남들도 그렇게 동조하고 있을거라는 상상을 믿고 있다.

- 느낌

주인공이 상담사와 나눈 대부분의 대화 내용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의 부재에 그 뿌리가 있어보인다. 확고한 정체성이 없으면 결국 타인에게 휩쓸린다. 그들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들의 목소리에 고개 숙이게 된다. 특히 전체적 관계를 중요시 하는 문화 속에서 나만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를 지키는 것이 전체의 화목을 위협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목사자녀로 자란 나는 타인들(교회성도)이 나를 표현하는 말에 타이틀을 많이 붙이며 살아왔다. 오해하지 마시라. 참 감사하게도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교회 어르신들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틀을 만들고 그 안에 나를 맞추었다. 담임목사 아들로서. 내가 생각해도 어릴때 부터 나는 그 일을 참 잘 한것 같다. 오히려 즐겼다. 그렇게 하면 칭찬도 받고 나름 부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 나도 목사가 되고 이 성향이 더 강화되었다. 교회 성도의 말 한마디에 신경이 곤두서게 되고, 가족을 부양하는 입장이 되니 더 눈치를 본다. 타인에 대한 실망과 나자신을 향한 자책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다.

- 적용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상담가의 조언이 마음에 와 닿는다. 나를 학대 해서도 안되고, 가혹해질 이유도 없다.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고 나 자신에게 이야기 해 주자. 그리고 남들을 향해서도 그렇게 이야기 해 주자.

잠자는 교회를 깨운다 (6) 최홍준

  6 대각성전도집회 - 푸른 바다를 닮은 사람들의 증언 제자훈련을 마친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자기정체성을 뚜렷이 정립하게 됩니다. 자기정체성이란 바로 자신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는 긍지나...